조글로로고
가야금 열풍 일으킨 총각선생님–조용군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0월24일 08시19분    조회:450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조용군

[편집자의 말]
 

길림신문 다큐 처녀작 오늘 첫선… 독자 여러분 시청 바랍니다   

뉴미디어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언론 매체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저마끔 새로운 시도로 개혁에 나서고 있습니다. 와중에 길림신문 역시 올해부터 전통적인 전파형식을 타파한 ‘문자+사진+영상’을 어우르는 매체 융합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독자들한테 조선족사회의 따뜻한, 긍정에너지가 넘치는 이야기를 살아있는 영상으로 체현해 더 현장감있고 생동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입니다.

오늘자 지면신문에 실리는 기사 <가야금 열풍 일으킨 총각선생님 –조용군>은 본지와 함께 ‘다큐’(纪录片) 형식으로 영상에 담아 길림신문 사이트와 위챗공식계정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영상기사 <가야금 열풍 일으킨 총각선생님–조용군>은 길림신문 력사상 처음 영상으로 제작된‘인물다큐’처녀작입니다. 앞으로도 생동하고 무게있는 영상 작품으로 여러분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길림신문 뉴미디어센터

조선족의 전통악기 가야금연주로 기네스북에 도전하고 싶다는 조용군 총각선생님(1982년생), 조용군은 연길시 신흥소학교 음악교원이다. 조용군의 노력하에 보급된 ‘가야금’은 이미 이 학교 명함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조용군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온 후 가야금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5-6학년 학생들의 연주는 대학 예술전공 4학년 정도의 수준에 이를 정도입니다.” 신흥소학교 부교장 김향화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남자가 무슨 가야금을 하냐?

“어머니, 저 악기 이름이 뭐예요?”

10살되던 해 부모님과 같이 공연 보러 간 조용군은 가야금 제3대 전승인인 김성삼선생님의 가야금연주에 푹 빠졌다. 그리고는 어머니한테 악기에 대해 물어보며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졸랐다.

하지만 “남자가 무슨 가야금을 하냐?”며 부모의 반대로 대학시기까지 가야금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가야금’이라는 세글자는 십몇년간 늘 그의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었다. 대학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 그는 가야금 학습반을 찾아 다니며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가야금은 배울수록 참 매력이 있더라구요.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고 들을수록 더 듣고 싶고 처음에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배우니깐 전문으로 배우고 싶어 졌어요.”

18년만에 꿈의 문을 열어

그러다가 조용군은 끝내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릴 결정을 내리게 된다. 28살되던 해 그는 늦깍이 대학생으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가야금 전공 시험을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도 대학입시 석달을 앞두고 …

그의 의외의 결정에 부모는 물론 모든 주변 사람들이 반대했다. “기초도 없는 네가 이 나이에 너무 늦었어.” “닭알로 돌을 치는 격이야, 포기해라.” “10년정도 책을 놓았는데 어떻게 대학입시 시험을 보겠느냐?” ... 한사람도 지지해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가출하고 자신이 모은 돈으로 대학교에 입학해 가야금수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예상대로 연변예술학교 고중에서의 첫 3월 월고 성적은 72명 학생중 72명으로 꼴찌였다.

〈이런 성적으로는 가야금을 배우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조용군은 그후부터는 첫시간 강의부터 마지막 강의까지 모두 록음해놓고 100% 외우다 싶이 하면서 악착스레 공부를 했다. 72등에서 40등을, 40등에서 2등의 훌륭한 성적으로 2008년 그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가야금전공에 입학하였다.

대학에는 입학했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하다보니 손이 굳어져 남들이 1-2시간 련습해야 하는 것을 그는 7-8시간씩, 지어 밤을 새며 련습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손이 터지도록 련습해도 내가 좋아하는 가야금을 선택했기 때문에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참 행복하구나 라고 느껴졌어요”.

자신의 화려함보다는 꿈나무 키우는 원예사로

“우리 학교에 오셔서 꿈나무들한테 가야금을 배워주지 않을래요?” 민족예술 보급 취지를 확고히 했던 신흥소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조용군에게 제의한다. 교원들의 가야금공연 작품을 잘 만들어줬던 적 있는 조용군이 아이들도 잘 가르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원보다는 무대에 서서 화려한 가야금수로 멋진 공연을 하는 것을 동경했던 그는 출로의 갈림길에서 스승인 김성삼선생님을 찾아간다. 김성삼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많은 꿈나무들한테 꿈을 심어주면서 우리 민족 음악을 보급시키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에 조용군은 배움에 갈망했던 어릴적 자신을 돌이키며 가야금수로서의 진정한 책임감과 의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원예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당시 신흥소학교를 비롯한 연변 각 소학교에는 가야금 선생님이 적었고 가야금도 보급되지 못한 정황이였다. 게다가 가야금써클에 참가하면 “공부에 지장되지 않을가? 가야금을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학부모들도 그의 가야금써클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 반년만에 그는 〈아리랑〉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에 힘 입어 그후 륙속 좋은 작품을 선보이자 연변TV, 북경 공연에 초청되면서 가야금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가야금을 30대에서 60대, 지금은 120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야금써클에 참가하겠다는 학생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들한테 잠재해있는 민족 흥 이끌어내야

가야금은 손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내기 때문에 줄과 손의 마찰로 물집이 생긴다. 한번 생기면 괜찮은데 굳은 살이 박힐 때까지 계속 련습해야 하니 그 과정은 고통이 동반된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은 한명도 없다고 한다.

“가야금은 두 손으로 하는 악기이기에 집중력 향상, 대뇌 발달에도 좋음을 알게 되였죠. 가야금을 배운 후로 아이가 무대에 오르며 단련 받다보니 내성적이던데로부터 활발해지고 성적도 향상되였습니다.” 6학년 김지민학생의 어머니가 말한다.

특히 올해 이 학교 가야금써클에 참가했던 3명 학생이 예술특장생으로 고중에 입학하는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또한 이 학교 가야금팀은 전국중소학생예술류콩클에서 금상을 따냈고 향항에서 열린 아세아청소년예술절에 참가해 80개 팀중 단연 1등을 따내기도 했다.

조용군은 “요즘 애들은 현대가요를 좋아하지만 그들한테는 우리 민족 끼와 흥이 다 잠재해있죠. 이런 흥을 끄집어내고 예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저의 큰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 높이에 맞게 수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라고 말한다.

1300여명 가야금연주로 기네스북에 도전해볼 터

이번 학기부터는 3, 4학년을 상대로 매주 1교시로 가야금수업도 진행하게 된다. 학교 전체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보급해야 함은 학교지도부와 그의 공동 희망이다.

제4대가야금전승인이기도 한 조용군은“학생들을 데리고 국내 무대에 서면서 곳곳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죠. 하지만 대부분 고쟁(古筝)에 익숙한 반면 가야금에 대한 인지도가 적음을 알게 되였죠. 금후 전국에 우리 민족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조용군한테는 한가지 소원이 더 있다. 바로 신흥소학교 전교 1300명 학생이 운동장에서 동시에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기네스북 등재에 도전해 국내외에 민족악기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가야금 교육에 모든 꿈을 바치며 아직 결혼도 못한 총각선생님, 그의 아름다운 소망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최화,정현관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0)   - 연변대학 미술학원 사진교연실 김광영주임 인터뷰     생존을 위한 개인적 영역 개척 필요 지난것을 보충, 거꾸로 갈수도 있어 재미있고 의미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이켜보면 변화가 가장 많은 부분이 오락이고 그중 단연 노래방이...
  • 2012-11-05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10) "붉은해 변강 비추네" 예술총감 박춘선을 만나   수년전 연변에는 두개 명함장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하나는 연변오동팀이고 다른 하나는 연변가무단이다. 오동팀은 최은택을 모시고 중국축구갑A리그 4강이란 위엄을 토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오동팀은 강급의 강력후보였...
  • 2012-10-26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4) 장익선  연변대학예술학원 장익선 음악학박사를 찾아서       음악 혹은 노래라함은 우리가 그림자처럼 늘 곁에 두고 함께 지내는 삶의  동반자와 다름이 없다. 특히 한많고 설음많은 우리민족에게 노래는 정서의 표현이요 심미의 발상이며 삶의 기록이라 하겠다. 머나...
  • 2012-10-22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2) 최룡국 부끄럼이 없어요 연변가무단 전임 악대 지휘 최룡국선생을 만나       오전 9시반경, 령하 13도… 립춘이 코앞까지 굴러왔는데도 마냥 포복행진을 하고 있는 날씨다. 하남가‘주부가원(州府嘉 )’정문에 들어서자바람 6동 아빠트를 찾아 좌우로 고개를 뽑...
  • 2012-10-22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박영만기자 = 흑룡강성 오상출신인 청도대학 음대 성악과 박주연교수는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전파하는 동시에 음악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있다.   박 교수는 상해음악대학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 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성악계의 재원이다. 서울대학 대학원 졸...
  • 2012-10-19
  • 국가1급무대미술설계사 김태홍화백의 작품세계   연변의 두번째 한락연 민족의 전통을 업그레이드 시킨 작품 생활은 모든 작품의 원천   김태홍화백 략력 1943년 흑룡강성 녕안 출생 1967년 중앙희극학원 무대미술설계학과 졸업 1967년~현재 중앙발레무극단 무대미술설계사 1984년 일본대학예술부희극연구소 특별...
  • 2012-10-18
  •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1:08:43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의 이야기   (흑룡강신문=연변) 김명록 연변 지사장 = 지난 7월 초 ,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양을 인터뷰했다. 취재시에 김은희부모님들도 동석하여 김은희 ...
  • 2012-08-10
  • “장백산촬영가” 한영을 만나다 “사진작품은 유감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년간 장백산을 촬영했지만 내놓을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장백산을 소재로 한 개인사진전을 열고 사진작품집 《격정의 장백산》을 펴냈으며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등 직을 지낸 한영선생이지만 겸손한 자세로 기...
  • 2012-08-09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